티스토리 뷰

"제 책 제목이 길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대충 '무례한 사람 정문정'이라고 검색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꼴페미'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제 이름이 뜨더라고요."




웃음소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4월 9일 월요일. 북바이북 상암점 지하. 옹기종기 모여 앉은 50여명의 관객들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을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 그대로, 정문정 작가는 뼈 있는 유머를 구사했다. 청중들은 그녀의 말에 때론 통쾌하게 웃고 때론 훌쩍였다. 그날의 강연 전체 Q&A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정문정 작가를 만나지 못한 독자들도 이 포스팅으로 그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꼴페미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을 만나다



Q. 책이 나오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A. 피드백이 많이 와요. 제목 보고 샀는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법은 왜 이렇게 조금 밖에 없냐 등등? 아, 새롭게 라디오도 출연하게 되었고, 2월부터는 독자분들과 북토크를 계속하고 있어요.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쓴 책인데, 나이가 어린 분들이나 남성 분들이 잘 읽었다고 할 때 기분이 좋아요.


Q. 책이 잘 팔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오히려 사람들이 절망적이고 좌절한 상태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해봤자 바뀌는 것도 없는데 왜?'라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촛불시위, 탄핵을 거치면서,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뭔가 되네?' '우리도 할 수 있네!'를 느꼈고, 나아가 '무례한 사람에게 내가 대처하면 바뀌겠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팔릴 때 이런 사회적 변화의 영향이 컸을 거예요.


Q. 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해야 하나요? 그냥 똑같이 무례하게 대하면 안되나요?

A. '웃으며'는 비굴한 웃음이 아니에요.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의 존엄을 망가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피식'하는 웃음이죠. 무례한 사람에게 무례한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자책하며 울거나 무시하죠. 저 사람이 이상한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런 생각도 들죠.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요새는 무례한 사람을 해치우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보여요. 우리도 누군가에겐 무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어요. 무례한 사람을 퇴치하는건 불가능해요.


Q.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 때 무례한 경우를 많이 겪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여자가 기가 쎄다.' '여자가 독하다.' '남자는 반장, 여자는 부반장.' 같은 성차별적 언행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겪었어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그렇게 화장하면 남자들이 무서워한다,' '그 다리에 치마가 웬말이냐,'라는 소리도 수도 없이 들었고요. 불만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남편에게도 '나 예민한 사람이야'라고 수차례 경고해뒀죠.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너 하나도 안예민해. 너처럼 곰같은 사람이 또 어딨겠어." 좀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예민한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무례한거구나! 이런 말에는 당연히 기분이 나빠야 하는구나! 그때부터 자기표현을 정확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나이 어린 여성일수록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우리 문화에서 자기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상처받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중략)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남성에 비해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평가를 받게 될까 봐 속마음을 숨긴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곱씹는 것이다. 곱씹다 보면 결론은 늘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내가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했을 거야'.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닐까?"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만 남는다.

그렇다고 강하게 불쾌함을 표현하면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기 쉽다. (중략) 한국 정서상 연장자나 상사에게는 그런 표현을 더더욱 하기 힘들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中

9일 저녁, 북바이북 상암점에서 정문정 작가(오른쪽)이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Q. 작가님은 왠지 처음부터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를 잘 했을 것같아요.

A. 아유, 전혀 아니에요. 저는 무례한 사람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참다참다 잠수를 타곤 했어요. 제가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 법이 없었죠. 그러다 입사를 하니까, 상사가 '네 의견은 뭐야?'라고 자꾸 묻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신입인 저의 의사를 물어본 상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니, 어차피 내 의견 말해봤자 지 맘대로 할거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상사를 잘만난거죠. 자기 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업무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관계들이 흐트러짐을 알았죠.


Q. 책을 쓰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A. 요새는 사람들이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왜 무례하게 굴죠?', 무슨 일에 대처하려 하면 '왜 웃으며 대처하지 않죠?'라고 놀려요.(웃음) 책을 쓰다보니까 무례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농담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말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어요. 자기자신이 무례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해야해요. 책을 쓰다보니 무례한 사람은 바로 '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예를 들어 일 안하는 선배에게 '선배 요즘 너무 꿀빠시는거 아니에요?"라고 하면, 선배는 웃으면서 내가 그런가? 하고 반성할테죠. 그러나 일이 서툰 후배에게 '너 요즘 너무 꿀빠는거 아니야?"라고 하면, 굉장히 무례해져요. 이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에요. 후배는 무척 상처받고 힘들어할거에요. 누군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애써요. 후배들이 괜히 제 눈치를 보게 하지 않아아하니까요

사회 생활에서 일어나는 차별적 언사들은 조직의 상하위계질서에서 비롯된 갑질에서 오는 경우가 많죠. 사실 성차별적 언행의 문제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에요. '불편하면 니가 나가면 돼.'와 같은 시스템이 가장 문제입니다. 저의 경우 직급이 좀 올라갔을때 회의실에 남성분이 한 분밖에 없길래 '귀남이네!'라고 한 적이 있어요. 농담이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고 분위기가 싸해졌어요. 그때 한 여자 후배가 '선배는 남자선배였으면 이미 감옥갔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더라고요.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나도 누군가에겐 정말 무례한 사람일 수 있다는걸 그 후배 덕에 알게 되었어요. 이런 경우에 최소한 '웃지 않기'부터 실천해야해요. 그게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첫걸음이에요.

한 남자 연예인이 코미디언 김숙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남자 같이 생겼어." 그는 평소에도 속물적이거나 무례한 질문을 막 던짐으로써 출연자들을 당황케 하는 게 특기였다. 이럴 때 보통은 그냥 웃고 넘기거나 자신의 외모를 더 희화화하며 맞장구치는데, 김숙은 그러지 않았다. 말한 사람을 지긋이 쳐다본 뒤 "어? 상처 주네?"하고 짧게 한마디 했다.

(중략)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사실 그 자체인 이 말은, 상대를 구석으로 몰지 않고서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상대는 곧바로 사과했지만 상처 준 사람이 되었고, 김숙은 깔끔히 사과받고 넘김으로써 쿨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숙에게 사과한 상대는 그동안 전혀 제지받지 못한 행동에 한번 제동이 걸림으로써 '이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자각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건 사실 그의 인생에서도 다행인 일이다. (중략)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무례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타인에게 제지당할 기회를 얻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갑질이 횡행할 수밖에 없다.

(중략)

김숙이 '가모장'캐릭터를 내세우며 "남자는 조신해야죠", "술은 남자가 따라야죠" 같은 반사 화법을 쓰는 것도 흥미로웠다. (중략) 이런 비틀기를 통해 사람들은 웃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간 별생각 없이 듣고 써온 말이 얼마나 편견에 찌들고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中

Q. '내가 말을 하면 무례한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A. 무수한 계기가 있었죠. 그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볼게요. 직장에서, 문제가 될만한 일을 벌인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그 사람의 상사였기 때문에 경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내가 상사가 아니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 고민해보았어요. 정색하고 잘못을 지적한다고 바뀔 것 같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서, 회식이 너무 많을때 '회식이 너무 많아서 너무 싫습니다. 저도 저의 삶이 필요합니다.'라고 정색하는 방법이 있고, 스치는 말로 조금씩 경각심을 주는 방법도 있죠. '회식 많이 하는 만큼 월급도 더 주셔야 하는거 아닙니까~ㅎㅎ', '이 정도면 고용노동부에서 연락 오는거 아닌가요~ㅎㅎ'와 같은 말이 쌓이고 쌓이면, 상사도, 이 말을 옆에서 보고 들은 동료들도 문제의식을 갖게 될거라 생각해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투비컨티뉴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