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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페미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을 만나다 -2-



Q. 웃으며 대처하기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요?

A.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은 보상금 받았잖아, 로또 맞은거야'라고 하시는걸 들었어요. '아저씨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어도 그렇게 생각하실거에요?'라고 했더니,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는 목적지보다 더 일찍 택시에서 내렸어요.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 경우는 달라요. 이건 괴물이죠. '웃으며 대처'하기 보다 얼른 상황을 모면하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이런 사람에게 에너지를 쓰기 싫거든요. 내가 아끼는 사람이 아닌, 잠시 스쳐갈 사람이니까요.

저는 꼰대가 싫어요. 꼰대는 이미 자신의 좁은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려서 말이 통하지 않거든요.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요. 제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 이렇게 반성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제 취미가 자서전 읽기인데, 꼰대들의 자서전엔 반성이 없는게 특징이에요. 예를 들어,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보면, 점심시간에 포크레인 기사가 자고 있길래 뺨을 때리면서 이렇게 나태하게 일할거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와요. 심지어 점심시간인데!(웃음) 다음 부분에는 무례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겠구나했는데, '이렇게 난 일을 열심히 했다!'로 끝나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죠.

저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준비해야해요. 누가 나에게 더이상 태클을 걸지 않는다, 주변에 또라이가 없다, 모든 항목에 다 체크를 하면, 바로 자신이 또라이란걸 알게되죠! 그 전에 미리미리 반성해야해요. 


Q. 부모님의 무례한 언행으로 상처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A. 부모님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연히 내게 사랑을 줘야 하는 존재로 여기면 안돼요. 부모님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풀려요. 가족이기 때문에, 감정이 상하면 서로의 밑바닥까지 긁고 후벼팔 수 있어요. 그러니까 본인이 너무 힘들 때는 가족과 거리를 약간 두세요. 가족이기에 보듬어 주기를 기대하다가는 오히려 실망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거든요. 정서적 여유가 있어야 서로를 보듬을 수 있죠. 젊은 분들의 경우에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도 좋아요.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아무래도 서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삶의 어느 한때에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아본 경험이 없으면 성장의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휘둘리게 된다. 만날수록 해악이 되는 자존감 도둑들이다.

첫 번째는 나를 감정 쓰레기통 삼는 사람이다. 부모와 자식 간, 특히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특히 이런 경우가 많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딸에게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을 습관적으로 비난하면서 딸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았다. (…)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감정받이를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왔다면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성인이 되면 최대한 빠르게 독립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를 볼모로 한 정서적 협박에 시달려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다.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항상 하소연만 하거나, 내 이야기를 꺼내도 금세 자기 얘기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 항상 그런 사람이라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런 이들은 성숙하지 못하다. 자신의 불행에만 함몰되어 당신을 존중할 여력이 없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자존감 도둑 떠나보내기'  中


Q. 왜 이 책을 '자기계발서'가 아닌 '에세이'로 쓰셨나요?

A. 자기계발서로 만들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너는 ~하면 된다'라고 제안하는건, 저보다 다른 분들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책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를 보고 어떻게 멘탈관리를 하셨나요?

A. 악플은, 이제 객관화가 되는 나이라 괜찮았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고, 취할 것만 취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평가를 받고 며칠 잠을 못잤죠. 그래도 귀담아 들으면 결국 저에게 좋은거잖아요. 잠깐만 기분 나쁘면 돼요.


Q.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책읽기에 매달린 이유가 있나요?

A. 어릴 때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돈 없을 때 가성비 높게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 책읽기잖아요? 도서관만 가면 공짜로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돈 안드는 취미라 좋았어요. 그리고, 현실에서는 내 꿈을 말하면 '정신차려', '다들 그렇게 사는거야' 류의 조언을 많이 듣잖아요? 책에서는, 너무나 멋진 어른들이 좋은 말들을 많이 해줬어요. 이상을 좇아도 된다고 말이에요.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빨간머리 앤』을 읽고서는 현실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배웠어요. 그리고 힘든 일이 닥치면, 박완서 선생님도 마흔에 등단했음을 떠올리면서, 나는 하나도 안늦었다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죠.


Q. 글을 쓰게 만드는 동력이 있다면?

A. 글쓰기를 오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별로 기대하고 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글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올라가죠. 주변에 글을 정말 잘쓰는 천재들을 보면 자극도 받아요. 하지만 제 실력은 단번에 오르지 않아요. 또 매일매일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는건, 더욱 말이 안되죠. 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독자를 의식하게 되고, 멋있는 말과 어려운 예로 글을 포장하게 되죠.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해요.


9일 저녁, 북바이북 상암점 지하. 강연 시작 30분 전. 일찍 자리잡은 청중들이 정문정 작가를 기다리고 있다


Q. 책이 출간 이후 계속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어요. 회사는 계속 다니시나요? 전업 작가로 활동하실 생각은 없으신건가요?

A. 안그래도 대표님이 왜 안 그만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자아실현만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게 꿈입니다! (웃음) 어릴 때는 지루하게 회사 따위를 다니면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우 잘 살고 있고요. (웃음) 회사에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Q. 다음 책 계획이 있다면?

A. 회사에서 열받게 하는 사람들 있으면 '너 다음 책에 나올거야!!'라고 벼르고 있어요.(웃음) 기본적으로 글쓰는 사람들은 뒤끝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무례한 사람에게~』는 20대 후반까지 스스로 느꼈던 것을 쓴 책이에요. 너무 최근의 일은 객관화가 안돼서 못쓰죠. 다음 책엔 30대 초반 여성의 고민을 쓰고 싶어요. 명예 남성이 되거나, 조직에서 떠나는 선택지 말고. 말가지지 않고도 멋있게 살 수 없나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이 책은 김무성 의원의 노룩패스로부터 시작됐거든요. 김무성 의원을 뮤즈(?!)로 삼아 쓴 책인 만큼, 새로운 뮤즈가 나타나면 거기에 맞춰 쓰고 싶어요.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이 독자와 만났을 때 쓰게 될 듯 하네요.

갑질의 신세계를 봤다. 김무성 의원이 선보인 '노 룩 패스(no look pass)' 이야기다. 그가 공항 입국장에서 수행원에게 캐리어를 밀어 보낸 영상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그를 맞이하는 수행원이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김 의원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쪽으로 가방만 굴려 보냈다.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데도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약간의 연기조차 할 필요를 못 느꼈을 정도로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후 논란을 해명하라는 요청을 받자 "그게 왜 문제가 되냐? 바쁜 시간에 쓸데없는 일 가지고..."라고 응수했다.

영상이 검색어 상위에 오르며 논란이 됐던건 아마 숙였던 고개를 들자마자 황급히 가방을 잡아내던 수행원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맛, 모멸감의 맛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 나 또한 김무성 의원의 캐리어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그러다 좀 슬퍼졌는데, 수행원의 모습에서 잊었던 모욕들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습관처럼 곱씹던 밤이 있었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도 밖에서 묻혀온 부정적인 말들은 털리지 않고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대학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이면 (…) 아르바이트를 했다. (…) "머리가 나쁘니까 이런 데서 일하지" 같은 말을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그런 이상한 말은 도처에 있었다. (…)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사람들의 이상한 말에 분명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례한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에 용기를 얻어 다음에도 비슷한 행동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에서 만나는 다음 사람들에게도 용인받은(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행동을 반복했다. 또한 나는 그런 말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패배감을 쌓아갔고, 그렇게 모인 좌절감은 나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터져 나오기도 했다.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갑질은 계속된다,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 中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



*이 포스팅은 직접 구입한 책과 유료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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