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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제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만큼 끔찍한 실수는 없다.

그러나 대부분이 특정인을 범주화하는 실수를 한다. 나도 예외 없이, 자주 실수한.

오늘은 나의 '재단당한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1 당신, 페미니스트야?


기차 여행, 가게가 보일 때마다 빠지지 않고 사먹는 앤티앤스 프레즐, 그리고 선물받은 .

나만의 갬성gaemseong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세 아이렘이다.

감성에 취해 사진을 인스타에 게시하자 얼마 뒤 받아본 처참한 디엠. 


"OO씨 페미 책 읽네, 페미니스트였어?"


예상했으나 예상치 못했다. 디엠이 오기 몇 시간 전 

"설마 페미니즘 책 읽는다고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어?" 하며 키득댔었으니까.

(그리고 대관절 어떻게 저 사진에서 텍스트를 읽어냈단말이오. 나만 안보임?)


박근혜 자서전을 읽는 모든 이가 박사모가 아니듯

로즈우드 기타를 치는 내가 마호가니 사운드를 더 좋아하듯

페미니스트 책을 읽는다고 페미니스트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요새의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이 부정적인 뉘앙스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

나쁜 의도가 다분한 이 디엠에 나는 아직도 답장하지 못했다.




2  국수주의자? 사대주의자? 국뽕과 유럽뽕 사이 그 어디쯤

*

스페인을 여행할 때 제주도 생각이 자주 났다.

나의 고향이자 관광지이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여기 좀 제주도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함께 여행하던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아 국뽕. 스페인을 제주도 따위랑 비교해?" 


국뽕 취급을 당하는게 기분 좋을리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닫았다. 그러다보니 그들과 여행하는 매 순간이 즐겁지 않았다.


사시사철 맑은 스페인의 휴양지와 비교하여

사계절이 몹시 변덕스러운 제주는 관광객에게 일관적인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하고

내 또래는 제주도를 맛없는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은 수학여행지 정도로만 추억하기에

반박을 포기하였다. 그들이 보지 못한 제주도의 아름다운 면을 아무리 설명한들 무슨 소용일까.


위) 발렌시아의 해변, 요트가 가득이다. 아래) 제주도 한림. 바다에 조업용 선박이 드문드문 서있다. photo by. 디디


위) 이탈리아 나빌리오 지구의 운하. 야시장의 불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저물면 수면은 백열등의 주황빛으로 물든다.

아래) 흐린 날의 제주 산지천. 하류이므로 나빌리오 지구의 운하보다 4~5배 크다. 바다 비린내가 내 향수를 자극하는 곳. photo by. 디디



**

어느 땐가 좁은 홍대에 여러 버스킹 무리가 몰려 어지럽고 시끄럽다는 이야기와 함께

스페인의 버스킹 문화를 설명했었다


스페인은 메트로(지하철)나 렌페(우리의 경의중앙선같은 광역 노선) 안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흔했다.

처음에 그들을 목격했을 때,  소음공해에 민감한 나는(한국에서는 문자로 신고도 곧잘했다) 속으로 화를 참았다.

스페인에 신고 시스템이 있을 턱이 없으므로(지하철에서 데이터도 안터지는 나라다) 참는 수밖에...

그러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환호와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찻간을 뒤흔들었고, 나는 벙쪘다.


그들은 팁을 챙기고 또 다음 칸으로 갔고, 또 다시 다음 칸으로 갔으며,

난 여전히 혼란했고,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로움이랄까, 문화차이랄까, 뭐 그런 잡다한 차이들에 꽤 놀라서

스페인은 땅덩어리가 넓고 워라밸이 균등한 여유로운 생활을 하므로

이런 버스킹 문화가 가능하다고 멋대로 결론 내렸다.


아마 홍대도 거리가 크고, 버스킹하는 사람이 적다면, 그리고 워라밸이 보장되어 여유롭다면

그 시끄러운 소리들이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까 하며 

구구절절 스페인의 버스킹 문화를 설명했는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이분 유럽뽕에 취했네. 유럽은 다 선진국같고 좋아보이죠?"


여자들이 다 그러더라고. 유럽 여행 다녀오면 좋은 것만 보고 오니까 뽕에 취해서...등의 말을 덧붙이기에 또 멍해졌다.


나, 이번엔 유럽뽕에 취한 사람이 되었다.




3  나는 국뽕에 취했나, 유럽뽕에 취했나, 아니면 선택적 뽕쟁이인가. 


아직도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난 그냥 나일뿐. 

다만 이 일들을 겪으면서, 그리고 짧은 타국생활 동안 여러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해명하기"와 "잘 어울리려 애쓰기"를 그만둔 게 큰 수확이다.

농담이든 진담이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숙이고 들어가 잘 지내보려 애쓸 필요 없다는 소리다.

괜히 착한사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애쓰는 순간 당신은 이 된다.


이렇게 뽕쟁이로 재단당할 경우, 그냥 스쳐가는 말로 흘려듣는게 최선이다.

(물론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나는 한참 멀었다)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오히려 불쾌함을 드러내라. 드러내야 상대방도 알고 앞으로 조심한다.

표정관리 할 필요 없다. 좋고 싫음을 분명히 하여 건전한 인간관계를 만들자!!!!

좋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상대방이 하기 싫은 말과 행동은 삼가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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