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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평사원에서 시작해 대기업 사장, 서울 시장을 거쳐 우리나라의 수장이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문재인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반자의 길을 걸었고, 격변기 이후에 대통령이 된 케이스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들만 보더라도 다수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매력이 하나씩은 있다. 그 사람의 정치적 신념이나 도덕성을 떠나서, 스스로 키우고 정치적으로 다듬어진 정치인의 이 매력이 선거의 당락을 크게 결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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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가 가진 매력은 '진실성'이다. 엘리트의 말씨를 쓰는 다정하고 소박한 화이트칼라의 소수자. 그가 걸어왔을, 누구나 상상 가능한 험난한 길. 깊은 사유에서 뿜어져나오는 확신에 찬 그의 연설 아래 그 고난한 길의 이미지가 깔려 사람들은 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차별의 역경에 귀감이 될만한 성취를 이룬 잘생긴 중년의 혼혈인에게 미국인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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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락에 뒤지지 않는 아내 미셸 오바마. 그녀의 개인적 성취의 화려함은 아마도 많은 흑인 여성을 고무시켰을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부부의 애틋한 모습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게 미디어에 비쳤다. 두 명의 딸까지 합하여 너무나 아름다운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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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을 때 경계했다. 본래 정치인의 자서전은 그 정치인이 쓴 글이 당연히 아닐 뿐더러(대부분 라이터를 따로 둔다) 수많은 자랑과 터무니 없는 일화가 부풀려져 담기기 때문이다. 즉 전략적 신격화, 신화화가 너무나 많이 등장하여 나를 거북하게 한다.
미셸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비커밍>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 많고, 짜여진 듯 완벽한 회상도 자주 나온다. 모두가 거짓은 아닐테지만 자신을 위해, 또 지지자들을 위해 여러 부분은 만져서 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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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비커밍>에서 감명받은 부분은 역시나 그녀가 추구하는 그리고 그의 남편이 추구하는 '가치'다.
아주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상적인 차별, 그 차별을 물리칠 수 있는 정치를 부부는 꿈꾸었고 어느 정도 실천해냈다. 나는 이들이 말하는 가치에 공감한다. 그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와 그런 정치를 하는 건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나,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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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가 진실로 어떤 사람인지를 고려하기 보다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사람들은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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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당신에게 알아서 적응하고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남들과 똑같이 잘 연구해내라고 요구한다.
물론 못 해낼 일은 아니다. 소수 인종 학생들과 저소득층 학생들은 늘 이런 과제를 극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려면 에너지가 든다. 강의실에서 유일한 흑인이 되는 일에는, 연극 오디션에 나서거나 교내 팀에 가입하는 몇 안 되는 비백인 학생이 되는 일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런 환경에서 입을 열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일에는 노력이 들고 별도의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와 친구들이 저녁마다 식사 자리에 모여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 것은 그 때문이었다."(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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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이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본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피부색이 달라 더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와 이슬람인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혐오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다.
미셸은 무리지음을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라 말한다. 힘이 드니까, 이질적인 집단에서 이질적인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도 동질적이려고 애쓰는 그 자체가 힘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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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성별, 빈부에서 오는 차별을 미셸 또한 많이 겪었고, 대체로 잘 이겨낸 듯하다. 오히려 그 결핍을 추진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미셸은 결핍을 추진력으로 만드는 그 힘을 모두가 낼 수 있지 않음을 안다. 차별받는 이들은 동일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배가 넘는 노력을 쏟아야함을 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듬어주는 위정자로서의 역할을 오바마가 했음을 미셸의 문장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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