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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에게 묻고싶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들의 미소를 간직하고 떠나기를, 

혹은 아름다운 모습만 남긴 채 조용히 삶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나요? 

어느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누군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기록입니다. 


친구와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주제로 대화한 날이었습니다. 

긴 토론 끝에 친구가 내린 결론은, '전쟁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였습니다.

전쟁의 선포가 그 자체로 인간의 기본권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고, 친구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민간인 희생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결과라 생각했을지도, 또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자신은 아닐 것이라는 강한 확신. 

그 오만함 때문에 친구는 '누군가'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뭉뚱그릴 수 있었겠죠.


이것은 '누군가'의 기록입니다. 

이것이 '나'의 기록이 아닌 까닭은, 

'누군가' '나'대신 희생되어 기록으로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 곧, 4월 3일입니다


할머니의 큰오빠는 제주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제일가는 수재였습니다. 여느 청년들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지닌 꿈 많은 젊은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끌려갔고, 죽었습니다. '경찰과 군인의 가족이 아닌' 동시에 '똑똑하다', 그러므로 빨갱이다. 그가 죽은 이유입니다. 마을 젊은이들을 구타하고 주민들을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총살하였습니다. 텅 빈 동네에 불을 놓아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곤을동'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만큼 참혹한 사연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신고된 건만 집계하여도 제주도민의 8분의 1이 죽거나 다쳤으니까요. 이 모든 사연을 통틀어 '제주 4·3사건'이라 말합니다.


1947년 3.1절을 기념하는 집회에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집회를 구경하던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에 채여 죽었습니다. 기마경찰은 모른체 달아나려했으나 이를 목격한 시민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습니다. 이것을 경찰에 대한 공격이라 여기고 시민들에게 발포해 사상자를 낸 것이 3.1 발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4·3의 도화선이 됩니다.


3.1 발포 사건으로 제주도민의 민심은 급격히 나빠졌고, 이에 항의하여 전체 직장의 95%에 달하는 기관 및 단체가 3.10 총파업에 동참합니다. 남로당(남조선노동당의 약자. 1946년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의 좌익활동도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이에 조사관을 파견한 미군은 제주도민의 70%를 좌익단체 동조자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제주도를 좌익의 거점,  'Red Island'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끔찍한 집단 학살이 시작됩니다.[각주:1]


제주4·3사건 7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동백꽃 뱃지. 도자기로 만든 뱃지도 있습니다. 동백꽃은 겨울이 지나면 커다란 꽃이 뚝 곤두박질칩니다. 

동백꽃은 4·3의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입니다.



― 제주4.3사건은 복잡하고,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위의 글은 제주4·3사건의 일부만을 제 나름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4·3사건은 위의 글보다 더 복잡하고, 정의 내리기 어렵습니다. 제주가 고향인 저도 제대로 알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교과서에서 여덟 줄이 채 안 되는 글로만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시의 아픈 기억을 속으로만 간직해야했던 어르신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 제주 4·3사건이 정부에 의한 집단 학살 사건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후, 4·3사건은 조금 더 주목받고, 조금 더 자유롭게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마음 놓고 아파할 수 있는 역사가 된 것이죠. 오늘은 제주4·3사건의 70주년을 앞두고 4.3을 다룬 세 권의 책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 제주4·3사건을 이해하도록 돕는 세 권의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허영선,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서해문집, 2014.


첫째, 역사를 직접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의 지은이인 허영선 시인은, 제주 4·3 평화재단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제주 4·3연구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2014년에 펴낸 이 책은 사건의 전개과정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4.3을 잘 모르는 분들도 읽기 편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에 방문했을 때 보고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현기영, 『순이 삼촌』, 창비, 1978.


둘째, 문학 작품을 통해 피해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순이 삼촌』은 4·3을 최초로 다룬 현기영의 중편소설로, 1978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실렸습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제주도민을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4·3사건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이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도민들은 후손들이 '빨갱이'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함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4공화국의 전두환 군부는 『순이 삼촌』을 금서로 지정했고, 현기영은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문제 의식이 공유되면서 제주 4·3사건의 공론화가 시작됩니다. 무려 4·3사건이 일어난지 30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주인공 순이 삼촌(삼촌은 제주 방언으로, 동네 어르신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입니다)의 삶을 제주도민의 삶이라, 그리고 상처 많은 우리의 역사라 생각하며 읽어주세요.

(현기영의 최근 인터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40600045&code=210100)



영화 <지슬> , 각본·감독에 오멸, 2013년.


셋째, 영화로 만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영화 <지슬>은 2012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제주도 출신인 저조차도 자막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영화에는 표준어 자막이 제공되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4·3사건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동굴로 피신해야 했던 마을 사람들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포실포실한 지슬('감자'의 제주 방언)을 나눠먹으며 곧 마을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마을사람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이 냉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영화입니다.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네이버 영화 정보: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354)



― 사실, 기억하기 싫습니다


가족일지언정 먼 친척인 청년의 아픔을 기억하기, 저도 싫습니다. 더군다나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더더욱 싫을테죠. 가끔은 기억하기를 강요받는 느낌조차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아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가 권력에 의한 수많은 희생을 목격해왔습니다. 그때마다 '시위에 나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죽음' 쯤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소개한 두 권의 책과 한 개의 영화는, 모두 '누군가'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스쳐가는 당신이, 위에 소개된 세 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지 오늘 하루만, 제주 4·3사건을 기억해주세요. 그들의 목숨도 당신의 목숨과 같이 소중함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어느 날, 부당한 권력에 의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주세요. 그때 4·3과, 다른 모든 이웃의 아픔을 떠올려주세요. 사실, 어쩔 수 없는 죽음 같은 건, 그냥 없어야 하잖아요.





  1. 실제로 4.3사건은 서북청년단, 남로당, 당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 미국의 입장 등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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