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에게 묻고싶습니다.당신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들의 미소를 간직하고 떠나기를, 혹은 아름다운 모습만 남긴 채 조용히 삶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나요? 어느 누구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누군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기록입니다. * 친구와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주제로 대화한 날이었습니다. 긴 토론 끝에 친구가 내린 결론은, '전쟁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였습니다.전쟁의 선포가 그 자체로 인간의 기본권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고, 친구는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민간인 희생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결과라 생각했을지도, 또 모르겠습니다. 친구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어느 날 난민 표명희 장편소설 [창비청소년문학83] ― 두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미혼모 '해나'와 그녀의 아들 '민'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편의점에서 일하던 해나는 사장의 기만에 분노하여 차를 훔쳐 섬마을로 달아납니다. 당장은 민과 함께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대책없이 버틸 생각이었습니다. 섬마을의 신도시는 새 아파트의 분양문제로, 또 곧 들어설 난민 보호 센터 문제로 뒤숭숭합니다. 해나는 미분양 세대가 많아 텅 빈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다 전단지에서 '전세 보증금 삼천만 원'이라는 글자를 보게 됩니다. 해나는 허경사의 도움으로 캐디로 취직하고, 민을 난민 보호 센터에 둔 채 전세 보증금을 벌기 위해 떠납니다. 둘째,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온 난민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베트남 전쟁 때 탈영한 한국..
요강을 쓰는 자와 요강을 비우는 자의 구분_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모세의 아기를 밴 나나는 모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갑니다. 그곳에서 모세 부모님의 묘한 수직관계를 인식하죠. 요강을 쓰는 자와 요강을 비우는 자의 구분. 의문을 품은 그녀에게 모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두사람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길일에 아기를 낳기 위해 배를 열라는 시어머니, 요강 없이는 배변을 못 누는 신체 멀쩡한 시아버지, 그리고 아픈 나나 어머니의 존재를 부모에게 숨기는 모세. “하지만 모세씨가 바라는 가족은 될 수 없어”라고, 나나는 결혼하기를 거절합니다. 분노한 모세는 그녀의 목을 조릅니다. 나나에겐 언니 소라와, 이들 자매를 먹여 키운 옆집 아줌마 순자와, 순자의 아들이..
〈비너스의 탄생〉을 본 첫 순간이 생생합니다.〈비너스의 탄생〉을 본 첫 순간이 생생합니다. 유리 보호막 안의 그림은 미술책에서 본 것처럼 크고 선명하지도, 반짝이지도 않았습니다. 절대적인 미에의 압도를 기대하던, 미술에 대해 아는 바의 총량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저는 기쁨 반 실망 반으로 우피치 미술관을 빠져나왔죠. 그러나 에어비엔비의 낯선 침대에서 잠들기 전 자꾸만 떠오르는 단 하나의 그림은 보티첼리의 그것이었습니다.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캔버스 위에 템페라, 172.5×278.5cm, 1486년, 우피치 미술관.그런데 여러분, 상상해본 적 있으세요? 여러분에게 강렬한 영감을 준 작품이 '위작'일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상상 말예요. 작품을 보면서 느낀 모든 감정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