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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난민  설 [창비청소년문학83]



― 두 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미혼모 '해나'와 그녀의 아들 '민'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해나는 사장의 기만에 분노하여 차를 훔쳐 섬마을로 달아납니다. 당장은 민과 함께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대책없이 버틸 생각이었습니다. 섬마을의 신도시는 새 아파트의 분양문제로, 또 곧 들어설 난민 보호 센터 문제로 뒤숭숭합니다. 해나는 미분양 세대가 많아 텅 빈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다 전단지에서 '전세 보증금 삼천만 원'이라는 글자를 보게 됩니다. 해나는 허경사의 도움으로 캐디로 취직하고, 민을 난민 보호 센터에 둔 채 전세 보증금을 벌기 위해 떠납니다.


둘째, 대한민국으로 도망쳐 온 난민들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 탈영한 한국인 아버지를 둔, '뚜앙',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여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단 이유로 오빠들에게 생매장 당할 뻔한 '찬드라', 과거 위구르족 무장 독립 단체에 속했었다는 이유로 중국 공안의 위협을 받고 있는 '모샤르'와 그 가족, 아프리카 부족장의 딸과 프랑스어 선생님 커플, '옹가'와 '미셸'. 이들은 난민 신청의 통과를 기다리며 섬마을의 난민 보호 센터에서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누가 신고를 했을까? 상처가 아물자 찬드라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중략)모든걸 지켜보고 있던 여자아이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는 불안과 분노가 같이 서려 있었다. 훗날 자기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야만적 태도에 분노하듯 결의에 찬 눈빛이었다.

꺠어난 후에도 찬드라는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공포와 분노가 교차하던 그 눈빛이 자신을 살려 냈던 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찬드라는 그 눈빛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49~50쪽)


― 두 개의 이야기는 난민 보호 센터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낯선 환경에서 서로를 경계하던 난민들과 민은 함께 한국어와 영어를 배우면서 가까워집니다. 낚시와 프라혹(캄보디아의 향신료)을 좋아하는 뚜앙처럼, 또 예쁜 눈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영어 선생님 찬드라처럼, 그들은 그동안의 억압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을 회복해갑니다. 그러나 이 순간도 잠시, 그들은 언젠가 난민 보호 센터를 나서야 합니다. 난민으로서 정착하거나, 또는 추방당해야 합니다.


"알고 보니 난민 중의 난민이구만, 강민이……."(93쪽)

출생 신고조차 되어있지 않고, 일정한 주거지가 없어 난민 센터로 떠밀려 온 민의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떠밀려 온 난민들의 이야기와 교차됩니다. 민도 난민이나 다름 없는 처지인 셈입니다. 이 땅에 설 자격조차 얻기 힘든 그들의 이야기는, 섬마을 사람들의 시위 모습과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주민들은 미분양 세대를 할인한다는 소식에 분신을 시도하고, 집값이 떨어질까 난민 보호 센터 설립을 반대합니다. 


'눈물의 할인 분양'
나는 그 문구들을 하나씩 바라보며 안도했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겠으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자 희망인 단어들이었다. 세상은 돌고 돌아 길게 보면 결국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지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중략)
'미분양의 무덤 ○○신도시, 시위 도중 입주자 대표 분신 시도…….'
해나는 자신의 첫 외출이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음을 꺠달았다.
집에 대한 갈망이 왠지 집착으로 비쳤다.(253~254쪽)



― 소수자에 대한 관심, 이제는 난민에게도


학대 아동,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우리 주변에는 관심이 필요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난민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고려해야할 골칫덩이로 여겨집니다. 우리 공동체의 문제가 아닌, '이방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표명희는 이웃에 하나쯤 있을 법한 '민'의 이야기를 난민들의 이야기와 교차함으로써 그들이 겪는 문제가 우리의 문제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인간도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다는, 난민 센터 소장의 말이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도망쳐 온 그들을 이방인이라 구별 짓기보다 이웃으로 보듬을 수는 없을까요? 섬마을 사람들 같은 어른들의 논리에서 벗어나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 지구별 위에서 인간은 이래저래 난민일 수밖에 없어. (278쪽)"


―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탈영병의 아들, 무슬림, 동성애자, 무장 독립 세력 가담자, 미혼모, 사생아, 민주화 운동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입니다. 창비의 다른 청소년 도서들이 그렇듯 우리 시대의 민감한 이슈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 반대로 섬마을 어른들과 같은 모습에 물들어 차별을 당연시하는 청소년이 읽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인권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러나 폭력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하고, 어린아이가 자살을 목격하는 장면이 묘사된 만큼 너무 어린 친구들이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영화로 치면 12세 관람가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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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전히 차별의 시선이 존재합니다.

"백성을 친자식처럼 사랑했기 때문이지요."(133쪽), "중국어가 얼마나 시끄럽고 소란스러운지 다들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218쪽), 동성애자인 허경사의 방 풍경 묘사(53쪽) 등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인권을 다룬 책이니만큼 좀 더 신경썼으면 좋았을텐데요!


+ 오늘(180401) 장국영의 사망 15주기 추모 기사가 많이 올라오네요. 20대 후반인 저는 장국영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난닝구만 입고 맘보 춤을 추던 장국영'이라는 기사의 한 줄로, 허경사의 방에 걸려 있던 영화 포스터의 주인공이 바로 장국영임을 알았습니다! (해나는 도대체 몇 살이길래 장국영을 알까요! 저만 모르나봐요.......)


― 아, 그 난닝구 입고 춤추던 남자 배우 맞죠?

해나가 알은체하며 말했다. 만우절에 자살한, 그래서 그 죽음이 더 실감나지 않는다던, 전설적인 배우의 쓸쓸한 표정이 담긴 얼굴이 침대 머리맡 쪽 벽면을 넓게 장식하고 있었다(53쪽)

ps. 청소년 도서임에도 어른들의 단어가 있습니다.

다이어트 실패한 카스트로(78쪽), 회색분자(76쪽), 좌백호 우청룡(192쪽), 우피 골드버그(198쪽) 등 청소년이 알기에는 힘든 단어가 나옵니다. 청소년 도서가 꼭 청소년만 읽는 책은 아니지만요!



※ 이 포스팅은 『어느 날 난민』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으나 제 주관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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